카테고리 : Sightseeing

여행, 그리고 shinlges

매일 매일 스케쥴 짜느라 두통에 시달리다
결국은,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 여행이란 어울리지 않은 것인가.
스케쥴도 정말 짜기가 어려웠는데, 여행은 더더욱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물론 스케쥴 덕분에 하루하루 예상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편했다.
하지만, 오늘 보기로 한 것을 다 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조금 시달리며 무리를 해서라도 일정대로 돌아다니기도 하곤 했다.

프랑스 파리 - 이탈리아 베니스, 피렌체, 로마 - 스페인 바르셀로나

겨우 4개 도시를 도는 것 뿐이였는데도 결국 나의 일정은 이렇게 바뀌었다.

프랑스 파리 - 프랑스 니스 - 이탈리아 베니스 - 파도바 - 피렌체 - 피사 - 로마 - 
        남부투어 폼페이유적지, 소렌토해변, 포지타노 (아말피해안) - 로마 - 밀라노 - 프랑스 니스 - 스페인 바르셀로나

파리에서 베니스로 가는 기차는 스위스를 경유하고 나는 스위스 유레일이 없는지라 스위스를 피해 니스를 찍고 돌아 베니스로 갔다.
잠깐 들렸던 니스는 정말 천국처럼 느껴졌다. 작지만 볼것 많은 도시랄까?
나에게는 이런 아담한 도시가 제일 좋은듯 하다. 에딘버러처럼~

베니스에서 피렌체 가는 길에 파도바를 들리고
피렌체에서 로마 가는 길에 피사를 들렸다.

로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완전 해피한 여행이였다. 내 맘대로 일정이였으니~~

나의 모든 고생길은 로마로 통한다. =.=

숙박은 처음으로 민박으로 잡았는데, 내가 준비해간 민박위치와 다른 새로운 숙소를 제공해줬다.
나쁠것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mistake.
로마 첫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아침 8시에 나와서 콜로세움을 관람하는데,
아침 10시부터는 태양이 이글거려서 그늘만이 나를 숨쉬게 해줬다.
콜로세움에서 적당히 시간을 떼우다가 포로로마노와 팔라티노로 향했다. 여기서 일사병으로 두어번 쓰러질 뻔 했다.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판테온, 스페인광장, 깜삐똘리오 언덕 등등 대부분의 관광지를 돌고
지쳐서 6시반쯤 숙소로 향했으나,
숙소주소도 없고 지도 표시도 제대로 안된 상태.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나는 길치.
기억으로는 이 집이 아닌데 지도 표시로는 거기가 숙소였다.
벨을 누를 수도 없고, 공중전화도 사용하기 어려웠고 첫날 관광후 숙소 찾다가 2시간을 방황했다.
결국 같이 합숙하는 친구들을 길에서 만나 구조되었다.

트라스트의 힘을 빌리고도 두 무릎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내가 조심해야 했던 나의 일차적 징후였다.

로마 둘째날, 바티칸 투어를 했다.
가이드의 열성적인 설명을 들으며 바티칸 시국을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성 베드로 성당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지칠대로 지쳐있었지만, 저녁을 먹고 다시 야간 투어를 보러 나갔다.
낮에 보지 못했던 천사의 성과 라보냐 광장? 이던가 그리고 콜로세움까지 추가로 돌고 왔다.
쓰러져 죽을 것 같았는데, 다음날 남부투어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나는 무엇에 홀린듯이 나의 몸상태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로마 세째날, 남부투어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으로 남부투어를 가기위해 아침일찍 일어나서 준비했다.
폼페이 유적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후 점심은 인근 식당에서 피자를 먹었다. 나름 코스요리라고 하더만.
하지만 입장료나 식사비용은 가이드비에서 제외되어 있어서 추가 비용으로 지출했다.
소렌토 해변을 둘러보고 포지타노에서 보트를 탄다고 했다.
포지타노 도착하기 전까지만해도 햇살은 따사로운 정도였다.
포지타노에서 우리가 보트를 빌려 바다를 향해 나가는 순간, 먹구름이 몰려왔다.
천연 옥빛의 바다에서 감탄하는 것도 잠깐, 돌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첨엔 그냥 맞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파도도 울렁거리고 우산으로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은 소나기가 뿌려댔다.
1시간에 10유로. 30분도 채 타지 못하고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어서 해변에 들어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상태로 수건에 몸을 감싸고 있는데, 다시 햇살 반짝.
결국 포지타노에서 소나기 맞은 사람은 우리 9명 뿐이였다.
8명 인원의 보트였는데 1명을 우겨서 9명이 타고 나가더니, 소나기 직격탄을 맞고 돌아온거다.  poor..
그리고, 나와 가이드는 40분의 시간동안 포지타노를 걸었다. 걸어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걸을 필요는 없었는데.
결국 나는 체력이 바닥에서 밑으로 내려갔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 멀미를 참아야만 했다.

뜨거운 햇살 + 소나기 + 40분 구보 + 3시간 30분의 멀미 로 인해 나는 그날 밀라노행 기차를 포기했다.

로마 네째날, 밀라노행을 지연시키고 하루 더 잤다.
오로지 쉬기 위해 하루 더 연장해서 민박을 한 것인데,
방은 이미 Full이였다. 민박 언니가 어디선가 매트를 구해오고 사라졌다.
나중에 자려고 보니,,,,매트에 까는 시트만 있고 덮는 이불은 안주셨다.
외투를 걸친 채로 민박집에서 노숙하듯이 잠을 잤다.

이것이 나에게 결정적인 카운트펀치를 날렸다.
지칠대로 지친 몸에 소나기 맞고 이불없이 잠을 잔 것은..등에 피뢰침을 꽂은채 천둥번개를 기다린 꼴이였다. 
그리고 아침에 나는 등에 천둥번개를 맞았다.
이 대못을 등에 받은 듯한 느낌은 대상포진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였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였던 것.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한의 스트레스 구렁텅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등에 번개를 맞은 채, 밀라노를 향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서 밀라노를 갔지만 4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패션거리를 둘러보고 역으로 돌아왔다.
밀라노역에서 패션거리까지 가는 길은 따사로웠으나, 역으로 돌아오는 길은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불어댔다.
역시 나는 비구름을 따라다니는건가... 의아해 했지만, 빈번한 날씨변화로 나의 감각도 둔해져 있었다.
밀라노에서 바르셀로나 야간열차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봤지만, 없었다.
파업으로 기차가 없어지고 대신 버스를 준비했다나? 12시간을? 버스로? 미쳤니?
무작정 따라오라는 안내원의 말에 어쩔수 없이 따라나갔으나, 밀라노 밖은 미친듯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기차는 없고 웬 버스며 어제도 포지타노에서 소나기로 다 젖은걸 말릴 새도 없이 흠뻑 다시 젖고 말았다.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는데 말도 안통하고 버스라도 타자 하고 승질 참고 있는데,
버스에서 경찰이 비자가 없다며 승차 거부했다.
그래서 나도 열받아서 환불을 요구했다.
경찰이 따라오라길래 환불해주려나보다 했지만, 이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였을 뿐.
경찰서로 나를 포함 백인 남자, 흑인 남자 3명을 구금했다. 띠용~~@@
비자문제로 시간떼울 요량인 듯. 어쨌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2시간을 기차도 버스도 못타고 경찰서에서 허비했다.

비에 젖은채로 성질만 돋우고 오갈데가 없어진 처지에 스트레스는 내 면역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herpes virus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로마 다섯째날, 밀라노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밀라노로, 밀라노에서 니스로
어제 밀라노행을 탔건만, 다시 로마에서 밀라노행을 탔다.
밀라노에서 잠을 자느니 야간 regionale를 타고 로마행을 선택한 것이다. 이게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잠시나나 불안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흑인 가족과 함께 잤는데,, 흑인 아기가 수두에 걸리지나 않았을지 지금와서 걱정이 되는군.
내가 아기를 만지지도 않은데다가 그때는 수포가 생기지 않았으니 염려할 필요 없는건가.
밀라노에서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환불받고, 얼마 남지 않은 선택의 시간을 두고 
바르셀로나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바르셀로나 가는 비행기를 알아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선택의 기로에 20여분 남겨진 채, 동양인 아저씨 한분을 만나서 나는 NICE행 기차를 타게 되었다.
동양인 아저씨는 영어도, 이탈리아어도 능통했다. 나에게 Poor You~를 날려주시며 나를 도와주었다.
나를 NICE행 기차에 태워보내신거지. 명함이라도 받아뒀다면 감사의 뜻을 전할 텐데...인상좋은 아저씨. 반했어요♡

그래서 니스로 다시 오게 됐다.
하지만, 때는 토요일 주말이였고 니스는 휴양지. 방이 없었다.
밀라노 로마를 오가는 바람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지도 못하고 물 몇 모금 마신게 전부.

내가 기력을 잃어가는 것과 반대로 점점 대상포진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거다.

니스에서 호스텔이 모두 Full인 관계로 잠잘 곳이 마땅치 않자, 지칠대로 지친 나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동병상련의 외국인 남자를 꼬드겨 호텔에서 도미토리 형식으로 둘이서 잠을 자자고 (=.=)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니스에서 하룻밤이나마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이 외국인은 노르웨이 출신 산악인인듯, 계속 산을 넘어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한다고 했다. 어딜 갈거라고 했는데 기억안남.

아침에 니스에서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탔다.
장장 12시간의 기차여행. 빵하나와 물로 하루를 버텼다.
이로 인해 내 등의 대상포진은 피부에 통증과 가려움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 첫날, 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오는 길이 멀고도 험난했어서
나름 바르셀로나 숙소에서의 첫날은 편안한 마음이였다.
등짝이 매우 간지러웠지만, 일단 자고 보자는 마음으로 쉬었다.

바르셀로나 둘째날,
등짝이 이상하게 오돌토돌하여 직접 보기 어려운 부분이므로 사진으로 찍어서 화면으로 봤다.
깜짝 놀랬다.
징그럽게 붉은 반점이 올라와 있었다. 난 그저 벌레에 심하게 물렸나 생각을 했고,
옷을 세탁하고 별다른 처방없이
여행 일정을 계속 했다.

바르셀로나 셋째날,
간지럼에 잠이 오지 않아서 다른 민박 외국인 2명과 수다를 새벽 2시까지 떨었다.
뭔가 정신없이 얘기하다보니 통증도 느끼지 못한 듯.

바르셀로나 넷째날,
랭킹1위의 호스텔에서 1박을 해보려고 숙소를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1층에 samsung LCD와 컴퓨터 1대 , BAR와 식탁,
지하층에 samsung LCD 큰거, 체스판, 여행책자, 컴퓨터 2대, 식당, 소파
샤워실과 화장실, 세면대가 각각 개별적으로 되어 있었고 침대칸도 깨끗했다.
bar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라틴계역 음악같은데 흥겹고 좋았다.

바르셀로나 다섯째날,
아침부터 흑맥주를 한병 거나하게 걸치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혼자 생쇼하로 girona 공항으로 가는데, 바르셀로나 버스에서 현기증 및 멀미 증세가 났다.
비행기 시간까지 쉬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또 승차 거부당했다.
인터넷 보딩패스가 문제였다. 난 유러피안이 아닌데 인터넷 보딩패스를 끊었으니, 다시 보딩패스를 받아오라.
하지만 비행기도 이미 늦게 도착한데다가 보딩패스를 받아오면 이미 비행기는 떠나고 없을정도로 나는 마지막 줄에 서 있었다.
어쩔수 없이 서둘러 내려가 보았지만, 스페인 라이언에어 직원은 패널티 5유로를 받아 쳐먹고서는
시간이 지나서 패스를 줄 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쪽지에 뭔가를 적어 주는데, new ticket 285유로..
오늘 비행기 티켓 가격이였다. 놀란 토끼 눈으로 직원을 쬐려 봤지만, 직원은 나와 눈을 맞춘 채 꿈뻑거리기만 했다.
내일 비행기 티켓은 123유로. 환불도 안된다고 하고..
믿을 수 없어 인근 인터넷으로 알아볼까 했지만, out of order. 게다가 10분에 1유로의 사용료.
라이언 에어 탈 때 조심했어야 했는데, 다 조사해놓고도....깜빡 잊었다.
그냥 내일 비행기 티켓을 사기로 했다.
결국 바르셀로나 GIRONA에서 16시간을 지새우고 나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동지들이 몇몇 있었기에 공항에서의 날밤새기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무서운건 내 등에서 대상포진의 피부반응이 일어나고 있던것이다.
등짝은 처참하게 붉은 수포로 번져 있었다.

난 그 유명항 베드버그인 줄 알고 버물리를 발라대며 베드버그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뒤지기 시작했다.
있는 욕을 다 해대가며 베드버그를 죽을 약을 찾아 boots pharmacy 에 갔었다.
하지만, 약방에서는 벌레에게 수백방 물렸다고 하니 봐야겠다고 해서 보여줬더니, infection이라며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을 가라고 했다.
잔디에서 햇볕을 쬐며 infection이라는 단어를 되내어 봤다.
나에게 왜 이런일이 생긴걸까..ㅡㅡ;;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갔지만,
의사는 만날 수 없다고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으니, 내려가서 만나보라고 한다.
간호사를 만나고 나오니 26파운드를 내라고 한다.
나는 의사를 원했다고 말해봤지만, 간호사를 봤으니 돈을 내랜다.
처방전도 없고 치료도 없고 돈만 내라고 하니..내지 말걸 그랬나.
게다가 현금박치기.
하지만, 친구 어머님이 내 등을 보고 곧바로 대상포진이라고 말씀하신걸
그 간호사는 이것저것 물어보고도 겨유 rash정도로 끝났으니, 괜히 만나본거지. 망할 간호사.

다음날 60파운드를 들고 의사를 만나러 갔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는데, 초조함과 함께 신경질적 증세가 최고조에 달할 무렵
의사의 호출이 있어 갔다.
내 등을 보더니, shingles라며 손짓으로 어려서 수두에 걸린 어쩌고...말하길래
알고 있다고 했다.
뭐 이런저런 얘기 끝에 진통제 처방전을 받아 들고 나왔다.
진통제 처방전 받으려고 60파운드를 낸건가.
또 아득히 멀어져가는 신뢰감을 뒤로하고 약을 사왔다.
졸음이 온다는 특징과 함께 이 약을 인터넷에서 조회해보니, 우울증 및 야뇨증 치료제..
의사에게 속았다는 느낌이 퐉 와닿고 있는 가운데, 좀더 다른 글을 읽어보았다.
대상포진에 이런 약을 처방하는게 잘 먹힌다고 하는군.
그럼 돌팔이 의사는 아니였나 보군.
그나저나 이거 자연치료되는데 2-3주는 걸리고
잘못되면 대상포진 신경통이 남는다는데 평생 고생할 수도 있다고........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함께 한 나의 여행은 이렇게 shingles때문에 두고두고 고생길이 열렸다.



by ACID1 | 2008/06/27 05:59 | Sightseeing | 트랙백

Mr.Black, Zimbabwe


런던에서 에딘버러까지 아침부터 coach타고 저녁까지 달렸다.
X5라는 지역버스를 타고 나서 national express로 갈아타서 갔는데,
웬걸@@ 뒤에 toilet에서 풍기는 X냄새가 정말 미치게 만들었다. 담배냄새만큼 역겨운 냄새를 살살 풍기고...
그 와중에 그 화장실을 이용하는 영국인들이라니...정말 비위가 강하시다.
중간자리에 앉았다가 냄새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정거장에서 앞자리로 냉큼 옮겨 앉았다.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영국 전역의 대낮 풍광을 즐길 수 있었따.
온통 초록 잔디 벌판에 푸르디 푸른 하늘, 두둥실 떠 있는 흰 양떼 구름들. ㅋㅋ
그리고 소 목장, 양 목장..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
언덕위에 castle,
영국은 초록 잔디 아니면 노란 꽃밭 <-모두 이 노란 꽃
똑같은 풍경을 12시간 보고 나니 에딘버러에 도착했다.
기묘한 분위기. 음산하고 스산한 ..
쌀쌀해진 날씨탓이 아니더라도 익히 들은 데로 팀버튼의 공포영화 분위기였다. 어설픈 공포영화
scott's monument, edinburgh castle, holyrood park, calton hill 모두 환상적이였어.
scott기념탑이 내뿜는 어두운 카리스마는 홀리루드 언덕에서도 빛을 발하고 ㅋ
에딘버러 성은 관광지답게 알차게 꾸며놓아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칼튼 힐에서 바라본 저녁 에딘버러 야경도 멋졌고,
도착하자마자부터 떠날때까지 어디서나 보이는 시계탑도 인상적이였다.
시계탑은 영화 "할람 포"를 봤기 때문에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 걸수도. 제이미 벨이 시계탑에서 보고 있을 듯한 느낌ㅋㅋ이였달까.
그곳 bus station 에서 가장 가까운 hostel을 예약했는데, 건물입구에서 흠칫 놀라서..여간한 뒷골목이여야지..
설마 여기가 아니겠지 하며 다른 입구를 찾아보았으나 달리 입구가 없었다. ㅡ.ㅡ;;
그곳 도미토리에는 외국인 여학생 2명이 이미 짐을 푼 상태였고, 또 다른 침대에는 남자의 흔적이 널려 있었다.
친구는 이렇게 허름한 호스텔은 처음이라고 경악했다. 가격에 비해 형편없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처음이여서 알 수가 없다.ㅎ
그 방은 호스텔의 직원도 자는 방이였다. 그리고 흑인 친구도 그 방에서 살고.
우리에겐 하룻밤 자는 곳인데, 흑인 친구에게는 주거지였다.
flat보다 싸다나? 그리고 매번 바뀌는 여행객 덕분에 생활이 재밌다고 하는군.
짐바브웨에서 영국으로 와서 에딘버러에서 사는데, 에딘버러의 오래된 건물들이 싫고, 뉴욕처럼 높은 신식빌딩이 좋다고;;;
그럼 왜 에딘버러에서 살고 있을까? 거긴 5층이상 되는 건물이 없던데.ㅋ
product designer라는데 3D design을 하는 듯 보였다. computer관련 종사자는 영국에서 취업하기 쉽다고 하는군. ㅋ
난 영어가 안되서 별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싱긋 싱긋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그닥 재밌지도 않고.
자꾸 나이를 묻길래, good night하고 잠잤다.
관광후에 돌아올 때는 야간 coach를 타고 왔는데, 볼 것도 없고 자리도 좁아서 잠도 안오고..좀 춥고 ...
게다가 새벽에 버스를 갈아타는데 휴게실에서 2시간을 버텨야 했다.
우리나라가 따뜻한 기후던가?  어찌나 추위를 타던지. 다시는 장시간 coach 여행을 피할 듯 싶다. 아마도 앞으로 영영..ㅋ

by ACID1 | 2008/05/26 01:16 | Sightseeing | 트랙백

Everton, Jamaica

런던에서 캠브리지로 오는 기차에서 흑인 아저씨를 만났다.

흑인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수염이 살짝 희끗한걸로 봐서는 40~50대 같지만,

그냥 보면 30초반같기도 @@;;;

Stenage 인가? 여기에서 주말에 DJ를 한다고 하는데, 음악은 레게 ...--;;

착한 사람인거 같은데, 주말에 오면 한국 음악을 틀어준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전화번호도 물어보는데, 무서워서 가르쳐줬고

근데 좀전에 진짜 전화왔다.

sorry와 pardon을 써가며 대화해줬다. 오늘은 못가고 내일 갈수 있으면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잃어버린 내 백팩이나 부탁해볼까......

정말 내 신세 너무 처량하다.

by ACID1 | 2008/05/10 21:14 | Sightseeing | 트랙백

JL 964 에서 만난 일본인 아저씨 NOSHI상

JAL의 창가에 앉아서 모처럼 오랜만에 한국을 떠나는 구나 싶었다.

이코노미 증후군을 걱정했지만, 예전과 다르게 별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내가 건강해진 걸까? 비행기가 좋아진 걸까?

옆자리에는 애석하게도 아버지뻘의 일본인 아저씨가 앉아계셨는데,

친절하고 좋은 아저씨였다.

짐도 올려주시려고 하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려는 듯 신경쓰는 눈치가 보였다.

앉아서 같이 식사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ㅋㅋ

긴장했던 여행이였는데, 아저씨 덕분에 편안해졌다.

내가 일본으로의 입국심사하는 데 내가 선 줄이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아저씨가 먼저 안가시고 나를 기다려주셨다. 내가 길을 모르니까, 같이 동행하면서 가르쳐주려고 친절을 베푸시는 듯.

내가 찾을 짐은 없었지만 (런던으로 보내놔서), 아저씨랑 같이 수화물을 챙기고,

Hotel Nikko Kansai Airport로 향하는 길도 알려주셨다. 다음날 내가 출국해야 하는 길도 미리 신경써서 알려주셨고.

여러모로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신 아저씨~ㅁ

명함을 건네주셨는데, 패밀리네임이 NOSHI였고 회사 이름은 NOSHI 어쩌구 였다.

그러니까, 사장이였다~--;;;;;

Kansai Airport로 가는 비행기였는데, 집은 그 근처인 Wakayama였다.

핸폰번호도 적어주더니, 놀러 올 일 있으면 먼저 메일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수첩속의 명함은 사라진 내 백팩 안에 있으니,,,,,,,,,,,,,,,,,,,,,,,,,,,,,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o=;;;;;;;;;;;;;

by ACID1 | 2008/05/02 00:57 | Sightseeing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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